[단독] 슬롯 꽁 머니 발표전 수상한 급등…우연 아니었다

미공개정보 빼돌린 증권맨들

내부통제 제도 악용 사례 급증
증권사가 특정종목 거래 막자
"주문 막히면 슬롯 꽁 머니 징후"
역으로 차명계좌 통해 사들여

고려아연, 공시 3일전부터 치솟아
커넥트웨이브도 직전 5일간 24%↑
▶마켓인사이트 11월 21일 오전 10시 17분

최근 증권회사 직원 사이에선 신흥 재테크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본인 명의로 된 자사 주식 계좌에서 매수 주문이 되지 않는 종목을 찾아내는 것이다. 거래가 제한된 종목은 공통 관심사로 떠오르고, 사내 ‘복도 통신’을 가동해 거래가 막힌 이유를 찾아낸다. 회사가 슬롯 꽁 머니 주관 업무를 따내 임직원 거래가 제한됐다는 소문이 들리면 가족과 지인 계좌를 통해 은밀하게 종목을 매수한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선행매매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보사 사태 무죄"

2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총 25건의 슬롯 꽁 머니가 이뤄졌다. 2022년 5건에 불과하던 슬롯 꽁 머니는 지난해 19건으로 급증했고, 올해에는 벌써 작년 건수를 넘어섰다.

슬롯 꽁 머니 발표 전부터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오르고 거래량이 치솟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지난 9월 13일 고려아연 슬롯 꽁 머니 계획을 발표하기 전 고려아연 주식은 3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이 기간 상승률은 5.1%였다. 슬롯 꽁 머니 발표 전 2거래일간 평균 거래량은 직전 1주일 평균 거래량보다 세 배 이상 급증했다.현대지에프홀딩스가 지난 11일 현대이지웰 슬롯 꽁 머니를 발표하기 전에도 주가가 갑자기 뛰었다. 슬롯 꽁 머니 발표 전 3거래일간 주가 상승률은 8.0%를 기록했다. MBK파트너스가 슬롯 꽁 머니 후 자진 상장폐지한 커넥트웨이브는 4월 슬롯 꽁 머니 발표 직전 5거래일간 주가가 24.8% 급등했다. 직전 거래일에만 주가가 18.9% 올랐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락앤락 슬롯 꽁 머니 계획을 공시하기 전날 락앤락 주가는 11.6% 상승했다. 업계에선 “슬롯 꽁 머니 때마다 사전에 정보가 새어 나가 주가가 뛴 것”이란 말이 나온다.

○‘블랙아웃’ 제도가 정보 유출 창구로

정보가 흘러나간 경로로는 증권사가 운영하는 ‘블랙아웃’ 제도가 지목된다. 블랙아웃이란 증권사가 특정 회사의 민감한 정보를 먼저 알게 되는 업무를 맡을 때 임직원의 해당 주식 거래를 일정 기간 제한하는 제도다.도입 취지와는 반대로 이 제도가 미공개 정보 유출의 창구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직원 주식 계좌로 특정 종목을 매수 주문할 수 없다면 기업이 재무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중대한 일을 맡았다는 ‘힌트’가 된다. 통상 유상증자와 인수합병(M&A) 자문, 슬롯 꽁 머니 등 업무를 투자은행(IB)본부에서 따냈을 때 임직원의 매수 주문이 막힌다.

올 들어 슬롯 꽁 머니가 늘며 블랙아웃 제도의 부작용도 부각되고 있다. 슬롯 꽁 머니 가격은 일반적으로 현 주가보다 높게 설정된다. 주가가 오른다는 정답을 미리 아는 셈이다. 증권사 직원은 사모펀드(PEF)가 대주주인 기업에 거래 제한이 걸리면 슬롯 꽁 머니 가능성이 크다고 유추한다. PEF가 슬롯 꽁 머니 후 상장폐지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증권사가 슬롯 꽁 머니와 함께 진행하는 인수금융에서도 슬롯 꽁 머니 정보가 샐 우려가 있다. 인수금융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투자심의위원회에는 외부 위원이 참여한다. 슬롯 꽁 머니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직접적인 슬롯 꽁 머니 대상 기업의 이름은 가리지만 투심위에서 ‘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 기업’이라는 식으로 대상 기업을 설명하기 때문에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슬롯 꽁 머니 전 정보가 새어 나가면 슬롯 꽁 머니자는 물론이고 기존 투자자도 피해를 본다. 기존 투자자는 슬롯 꽁 머니 전 주가가 이상 급등할 때 지분을 매각한다면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슬롯 꽁 머니와 관련해 불공정 거래 여부를 엄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박종관/차준호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