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눈부신 슬롯사이트사이트 슬롯사이트사이트! [고두현의 아침 시편]

슬롯사이트사이트(歸蜀途)
서정주

눈물 슬롯사이트사이트 슬롯사이트사이트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신이나 삼어 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슬롯사이트사이트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을로 가신 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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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의 두 번째 시집 『슬롯사이트사이트』에 실린 표제작입니다. 이별의 정한을 이보다 더 시적으로 표현한 게 있을까 싶습니다. 최근 미당의 시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책 『나만의 미당시』(은행나무 펴냄)가 출간됐습니다. 지난해 말 출범한 동국대 미당연구소가 꼼꼼하게 기획한 책입니다. 시인 30명이 각자 뽑은 미당 시와 감상을 실었는데, 80대 이제하·마종기·정현종 시인부터 20대 여세실·권승섭 시인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저는 이 시 「슬롯사이트사이트」에 얽힌 이야기를 썼습니다. 오늘은 편지 형식이 아니라 책에 실린 원문을 그대로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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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제목도 모르고 혹했다. 첫 구절 때문이었다. “눈물 슬롯사이트사이트 슬롯사이트사이트”이라는 시구를 보자마자 눈앞이 아른거리면서 심장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가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이어지는 구절은 더 애틋했다.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가슴 한쪽이 미어지는 듯했다. 어쩌면 슬픔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이나 삼어 줄걸 슬픈 사연의”에서 슬롯사이트사이트이 차오르더니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에서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당시 우리 가족은 남해 금산 중턱의 작은 절집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일제 때 북간도로 뜻을 품고 갔다가 실패하고 전쟁통에 몸까지 상한 뒤 늘그막에 닿은 곳이 절집 곁방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오진 못하는” 곳으로 쓸쓸하게 먼 길을 떠난 상황이었으니 열네 살 소년의 가슴에도 애잔하고, 슬프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울림이 뭉근하게 전해졌다.

산 아랫마을 친구네 삼촌 방에서 이 시를 읽은 나는 그 자리에 엎드려 공책에다 한 줄씩 베껴 썼다. 옮겨 쓰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잘못 적은 구절들이 있다. “밟으신 길”을 “떠나간 길”로, “목이 젖은 새”를 “목이 메인 새”로 무심코 옮기다가 아하, 하며 고쳐 썼다. 그러면서 왜 이런 시어를 썼는지 어렴풋이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대학 국문과에 입학해 향가(鄕歌)와 여요(麗謠)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이 시를 다시 옮겨쓰게 됐다. 그때 행간에 담긴 깊은 뜻과 오묘한 말맛, 매혹적인 운율, 눈물겨운 서정의 참맛을 새롭게 발견했다. 아 “제 피에 취한 새가” 우는 소리의 공기 진동이 시인의 몸을 만나면 이렇게 둥근 “슬롯사이트사이트 슬롯사이트사이트”의 눈물로 변하는구나. 이 “눈물”이 마지막 연에서 “은핫물”로 확장되는구나. 방울진 눈물에서 굽이진 강물로 증폭되는 그 “슬롯사이트사이트 슬롯사이트사이트”의 사이에 지상과 천상을 아우르는 사랑과 그리움의 정한이 우주처럼 펼쳐지는구나.

이 특별한 그리움의 공간은 서역과 파촉의 삼만 리, 밤하늘 은하의 양쪽 너비를 단숨에 뛰어넘는다. 이미 지난 서역의 길이 땅 위의 그리움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지금 굽이굽이 흐르는 은하의 물길은 하늘의 그리움을 비추는 수면이다. 이 시공간을 이어주는 땅의 매개가 “육날 메투리”로 상징되는 신발이고, 하늘의 매개가 “제 피에 취한 새” 즉 슬롯사이트사이트(두견새) 아닌가.

시에 담긴 옛 설화의 의미가 비로소 다가왔다.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난 촉(蜀)나라 망제(望帝) 두우(杜宇)의 넋이 두견새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슬롯사이트사이트(歸蜀) 슬롯사이트사이트” 슬피 우는 사연.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피를 토하며 울고 토한 피를 다시 삼켜 목을 적신다고 했을까. 그 한스러운 피가 진달래 뿌리에 스며 꽃이 붉어졌다거나 꽃잎을 붉게 물들였다고 하고, 그래서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부른다니…….

미당은 이 시에서 새가 제 피를 다시 삼키는 대신 “은핫물”로 목을 적신다고 표현했다. 이 대목에서 한 맺히고 억울한 새는 하늘 물로 “슬롯사이트사이트 슬롯사이트사이트” 제 몸을 헹구며 새로 태어난다. 그 새의 눈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이 곧 은하수다. 강물의 양 끝에 서역과 파촉, 님과 내가 있다. 눈물과 이별의 정한을 한층 높은 차원의 사랑 노래로 승화시키는 이 기막힌 솜씨 앞에서 나는 금세 순한 님이 된다. 소월의 「진달래꽃」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이별을 전제로 한 사랑 노래라면 미당의 「귀촉도」는 “다시 오진 못하는” 기왕의 이별 위에 애틋한 그리움을 녹여낸 사랑 노래다.

나를 전율케 한 또 하나의 요소는 탄복할 정도로 살아 꿈틀대는 운율의 묘미였다. 3음보 7·5조의 전통 율격을 잘 살려 내면서 전체 14행 중 12행의 뒷부분을 모두 2+3(또는 3+2)음절로 절묘하게 엮어낸 솜씨에 기가 막혔다. 1연의 “밟으신 길은”부터 “파촉 삼만 리”, 2연의 “슬픈 사연의”부터 “엮어 드릴걸”, 3연의 “지친 밤하늘”부터 “슬롯사이트사이트 운다”까지 그야말로 미당만이 할 수 있는 천부적 음수율이 아닐까 했다.

우리말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부리면서 하늘이 내릴 법한 시를 쓰려면 어떤 경지에 올라야 할까. 슬롯사이트사이트이 이 시를 처음 발표(『여성』(1940), 개작 후 『춘추』(1943)에 게재)한 나이가 스물여섯 청년이었으니 가히 ‘타고난 시인’이요 ‘천의무봉’이라 할 수밖에.

그러나 이게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그의 호 슬롯사이트사이트(未堂)이 ‘덜 된 집’ ‘아직은 조금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인 것처럼 그는 지극한 마음으로 시를 모시고 혼신의 힘으로 시를 썼다. 피가 마를 정도로 육체와 정신을 혹사했다. 게다가 ‘늘 소년이려는 마음’까지 갖췄으니, 아무나 흉내 내기 힘든 천상의 경지가 여기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1997년 서울 남현동 댁에 들렀을 때 일이다. 그날 봉산산방에 단군처럼 앉아서 슬롯사이트사이트은 들이단짝으로 ‘심장’ 이야기를 했다.
“아, 글쎄. 슬롯사이트사이트이 말라붙었어. 표피건조증이라고…… 말라붙어서 북가죽마냥 됐단 말일세. 평생 시를 쓰느라고 슬롯사이트사이트을 너무 혹사해서 그런 게지. 시는 감동 아닌가. 얕은 기교는 못 써. 이맨큼 오그라붙도록 온 슬롯사이트사이트으로 써야 하는 거야. 슬롯사이트사이트은 시의 근본이여. 뜨거운 정신의 뿌리!”

그랬다. 심장! 점심때부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심장과 뿌리 얘길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날 슬롯사이트사이트은 맥주잔을 가만가만 들었다 놨다 하면서 제법 많이 마셨다. 제발 술 좀 줄이라는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늘 하던 것처럼 “아직도 맥주가 젤로 좋아”라는 말을 후렴구로 덧붙였다. “국화밭에 물 주듯이 심장을 축축하게 적셔주는 거 말일세. 그렇지 않은가?”

국화와 물. 슬롯사이트사이트 “진달래 꽃비”에 「첫사랑의 시」가 겹쳐졌다.
“국민학교 3학년 때/ 나는 열두 살이었는데요./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해서요./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그러면서 산에 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국화밭에 놓아두곤/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

산돌을 주워다가 날마다 물을 주어 기르는 마음. 거기에서 꽃이 필 리 없건만 날마다 지극정성으로 물을 주어 기르는 순백의 심성. 시인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평생 아이의 마음, 팔순 넘어서도 ‘아직 철이 덜 든’ 초동이었다. 그런 그가 마침내 아이가 되어 자신이 왔던 그곳으로 돌아갔다. 2000년 12월 24일 밤, 눈 내리는 성탄 전야에 “하늘 끝”으로 “호을로” 갔다. 촉나라 두우가 떠난 “서역 삼만 리”,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 리”보다 더 먼 길을.그로부터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했지만, 어릴 적 만난 “눈물 슬롯사이트사이트 슬롯사이트사이트”의 놀라운 공명과 함께 「귀촉도」의 울림은 여전히 내 심장을 일렁거리게 한다. 소년기에 처음 본 순간의 그 떨림, 젊은 날 습작기에 새로 발견한 말맛과 운율, 시공간을 초월하는 애가(哀歌)의 깊고 도타운 의미를 되새기면서 오늘 다시 이 시를 공책에 옮겨 써 본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