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채권도 휴지 조각돼"…슬롯 꽁 머니, 세계 첫 코코본드 퇴출

"작년 CS 사태로 신뢰성 흔들려"
36조원 관련 시장 단계적 폐지
호주가 크레디트스위스(CS) 위기 이후 논란이 된 신종자본증권(슬롯 꽁 머니1) 시장을 폐지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호주건전성감독청(APRA)은 슬롯 꽁 머니1 시장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APRA는 “슬롯 꽁 머니1이 위기를 겪는 은행을 안정화하거나 무질서한 파산을 방지한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다수가 동의했다”고 밝혔다. 내년 말까지 관련 규정을 확정한 뒤 2027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호주의 슬롯 꽁 머니1 시장 규모는 400억호주달러(약 36조5000억원)에 달한다. 호주 주요 4대 은행은 위험가중자산의 최소 1.5%를 슬롯 꽁 머니1으로 보유하고 있다. 새 규정에 따라 이들 은행은 기존 슬롯 꽁 머니1을 보완자본이나 보통주자본으로 전환해야 한다.코코본드로 불리는 슬롯 꽁 머니1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납세자가 은행의 파산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채권 상품이다. 은행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부의 구제금융보다 먼저 활용돼 비상금 역할을 한다. 투자자 동의 없이 상각되거나 보통주로 전환될 수 있다.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대신 원금 손실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스위스 최대 은행 UBS가 CS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스위스 금융당국이 160억스위스프랑(약 26조원) 규모의 슬롯 꽁 머니1을 전액 상각하기로 결정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일반적으로 채권은 주식보다 변제 순위가 앞서지만 스위스 당국은 CS 주식 22.48주를 UBS 1주로 전환하면서도 슬롯 꽁 머니1은 전액 상각했다. ‘회생 과정에서 전통적인 자본 청산 순위를 반드시 지킬 의무가 없다’는 채권 약관을 이용한 것이다. 안전하다고 믿은 은행채가 휴지 조각이 되면서 슬롯 꽁 머니1 신뢰성이 크게 흔들렸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