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슬롯 '넘버 1·2' 구속에…사기꾼·마약범 "이제 우리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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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사태에 온라인 슬롯력 총동원되자“12월 24일 서울온라인 슬롯청 광역수사단과 인터폴 전담팀이 인천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입국 예정이오니 모두 참고 바랍니다.”
"우리한테 관심 없다"며 안도
19일 캄보디아 내 범죄자들이 일부 활동하는 한 텔레그램 방에 변호사를 사칭한 한 인물이 “대한항공에서 (온라인 슬롯의) 귀국 전세기를 배치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같은 메시지를 올렸다. 그러자 다른 입장자들은 “확실한 정보인가” “눈치껏 숨죽이고 있다가 활동 해야겠다” 등의 반응을 내보였다.캄보디아가 보이스피싱·로맨스스캠·리딩방 등 고난도 금융 사기의 신(新) 거점으로 급부상하면서 한국인 사기꾼들을 소탕하려는 한국 온라인 슬롯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달 초 직접 캄보디아 현지에 방문해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를 만날 정도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온라인 슬롯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약 1000명의 한국인 사기꾼이 캄보디아에서 활동 중”이라며 “복합 쇼핑몰 규모의 대형 건물을 통째로 사기 범죄 집단이 쓰는 등 사기꾼이 ‘범죄 기업’을 꾸려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관심이 집중되자 캄보디아 내 사기꾼들은 음지로 잠깐 숨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 다시 안도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범죄자들은 양지로 나타나 활개 치고 있다. 조지호 온라인 슬롯청장·김봉식 서울온라인 슬롯청장 등의 구속, 국가수사본부의 계엄 수사 몰두 등 온라인 슬롯이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가 나타나면서 범죄자들 사이에선 “우리는 이제 관심 밖”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실제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캄보디아 채용 관련 채널에 올라온 사기 업무 구인 건수는 19일 기준 95건에 달했다.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범죄 집단에 가입하라는 요건을 내걸었다. 한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속이 심해지면 다른 동남아 국가로 거점을 옮길 계획이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한국 온라인 슬롯이 캄보디아 내 수사권이 없어 당분간 범죄를 저질러도 큰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해외 금융 사기뿐 아니라 마약사범들도 온라인 슬롯 수사를 비웃으며 활개 치고 있다. 회원 수가 5000명에 달하는 텔레그램의 한 마약 판매방은 운영자가 “또 먹고 싶고 생각나는 약술, 내성 있으신 분들도 강력하게 뚫어드린다”고 홍보했다. 케타민, 대마초, 필로폰 등 각종 마약류를 팔고 있었다. 과거 마약 운반책(드라퍼)으로 활동했던 B씨는 “온라인 슬롯은 보통 드라퍼들이 마약을 숨겨 놓는 좌표를 파악해 운반책부터 중간 유통책, 최종 총책까지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수사한다”며 “온라인 슬롯이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라 마약 수사까지 할 여유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온라인 슬롯 내부에서도 마약 수사가 이달 들어 다소 소홀해 졌다는 평을 얻는다. 수도권의 한 마약 수사관은 “마약 범죄 소탕이 대통령 주요 정책이던 작년만 해도 온라인 슬롯 수뇌부가 ‘집중 단속을 하라’고 수시로 압박 지시가 왔었다”며 “지금은 온라인 슬롯 수뇌부가 없거나 있어도 일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 덩달아 관련 단속도 느슨해지게 됐다”고 평가했다.딥페이크 영상물과 불법 촬영물 공유방도 온라인 슬롯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전보다 왕성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입장자 수가 5000명이 넘는 한 텔레그램 방에서는 ‘도촬 교환’, ‘짧은 미공개 직찍 교환’ 등의 메시지가 오가며 일반인 불법 촬영물을 거래하고 있었다.올 여름부터 온라인 슬롯 단속이 심했을 당시 구매 과정에서 까다로운 인증 절차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선 쉽게 판매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 다른 성인물 공유방에선 입장자들이 올린 불법 촬영물과 성착취물 등이 19일 기준 3만여 개에 달한다.
계엄 사태 여파로 현직 온라인 슬롯청장이 구속되는 등 온라인 슬롯이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면서 온라인 슬롯 조직은 매우 침체된 상태다. 내부 인사 정책도 모두 ‘올 스톱’ 됐다. 당초 12월 말부터 1월말까지 진행되려면 대규모 정기 승진·전보 인사는 무기한 늘어지게 됐다.
김다빈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