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 슬롯에 붙어 사는 인간들과 바다의 따개비는 다를 게 없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지갤러리
송예환 개인전 '파라오 슬롯 따개비들'

마분지 조각 잘라 만든 설치 작업으로
파라오 슬롯 속 획일화된 인간들 비판
2025년 2월 15일까지
송예환의 개인전 '파라오 슬롯 따개비들'이 열리는 서울 강남구 지갤러리의 모습.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에 들 때까지, 현대인들이 놓지 못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파라오 슬롯이다. 조금이라도 웹 통신이 끊기면 불안해하고,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을 땐 세상을 잃은 듯 아득함을 느낀다. 이렇듯 매일 파라오 슬롯에 붙어 사는 인간들에게서 '따개비'를 떠올린 작가가 있다. 선박이나 해안가 바닥 밑에 엉겨붙어 사는 따개비들과 파라오 슬롯에 매달린 인간들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파라오 슬롯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비판하고 나선 작가는 송예환. 역설적이게도 그는 파라오 슬롯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드는 웹 디자이너다. 그래픽 디자인, 앱 디자인 등의 작업을 하던 그는 파라오 슬롯만큼 획일화된 공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부터 파라오 슬롯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올해 30세를 맞은 젊은 작가인 송예환은 사용자를 따돌리고 플랫폼의 이익만 극대화하는 웹디자인의 실태를 비판하는 작품을 끊임없이 내놓으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작년엔 두산아트랩의 전시 참여 작가 5인에 선정됐고, 제24회 송은미술대상 본선에도 참여하게 됐다. 여기에 오는 4월 열릴 국립현대미술관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 ‘젊은 모색’에 이름을 올릴 15명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송예환, 월풀, 2025.
그가 주력하는 작업은 설치 작품. 전시장에 작품을 통해 거대한 웹 세계를 꺼내놓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런 송예환이 서울 청담동 지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관객을 만난다. 전시 제목부터 ‘파라오 슬롯 따개비들’이다. 따개비의 모습과 파라오 슬롯을 사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연결시킨 작업 3점을 내놨다.

그는 마분지 조각을 정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자른 뒤 틈 없이 정교하게 조립했다. 그리고 마분지 표면을 스크린처럼 구성하고 그 위에 영상을 투사한다. 흘러나오는 영상은 송예환이 직접 새로 만든 웹사이트를 녹화한 것이다.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웹 서핑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알고리즘에 의해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를 얻는다는 데서 영감을 얻었다. 고립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이 모습이 마치 표면에 붙어 모여 살아가는 파라오 슬롯와 닮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송예환, 파라오 슬롯, 2025.
또다른 작품 ‘회오리’는 파라오 슬롯에서 이뤄지는 일방적인 정보의 흐름을 자연 현상에 빗댄 작품이다. 가장 높은 곳인 망루에서 정보가 떨어지고, 정보는 회오리를 타고 일방적으로만 전달된다. 이 작품에도 마분지 스크린이 사용됐다. 밑에 설치한 마분지 속에 사람들을 담은 영상을 틀었다. 스크린 속 인간들은 정보만 받을 뿐 소통은 할 수 없다. 각자의 스크린에 갇힌 채 편향된 소식만 듣는 셈이다.

그가 연약한 재료인 마분지로 스크린을 만든 데도 이유가 있다. 기술이 정교하다는 것 또한 인간의 환상이며, 사실은 취약한 점이 많다는 것을 재료로 꼬집은 것이다.마지막 신작 ‘의심하는 서퍼들’은 바다 아주 깊은 곳으로 잠수하는 서퍼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를 통해 디지털 생태계가 마치 심해로 잠수하듯 깊고 어둡게 얽혔다는 메시지를 나타낸다. 깔끔한 파라오 슬롯 사이트 아래 숨어있는 통제 알고리즘을 표현했다. 전시는 2월 15일까지 펼쳐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