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의 승자는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인 경우가 많았다. 개인 투자자는 외국인이 대거 매집한 종목을 뒤늦게 따라가다가 고점에 물려 손실을 보는 사례가 허다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뒤집혔다. 지금까지 개인보다 외국인의 평가 손실이 더 큰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인이 ‘올인’한 주가가 연초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늘 슬롯 꽁 머니 좇다 피 본 개미, 올해는 '한발' 빨랐다

20조원 폭풍 매수했지만 ‘손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 들어 국내 주식시장에서 총 19조349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증시가 급락하기 전인 1~7월로 기간을 좁히면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는 24조7437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올 들어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5.48%, 11.58% 하락했다.

외국인은 1~7월 슬롯 꽁 머니와 두 종목에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슬롯 꽁 머니를 10조7660억원, SK하이닉스를 1조741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전체 투자금에서 슬롯 꽁 머니 한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43.5%에 달했다.

이 기간 슬롯 꽁 머니와 SK하이닉스는 각각 6.88%, 37.53% 상승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미국 경기 침체 우려와 함께 ‘인공지능(AI) 반도체 업황 고점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두 회사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슬롯 꽁 머니는 7월 고점 대비 약 24%, SK하이닉스는 약 35% 떨어졌다.

반도체주가 흔들리자 외국인은 지난달부터 지난 9일까지 슬롯 꽁 머니를 4조원어치, SK하이닉스는 1조4000억원어치 팔아치웠다. SK하이닉스는 상반기 매수한 물량을 대부분 던졌다. 올해 기준 외국인의 슬롯 꽁 머니 순매수 잔액은 아직 6조7000억원 남아있다.

지난 3개월간 외국인의 슬롯 꽁 머니 순매수 평균가는 8만256원이다. 이날 종가는 평균가 대비 17.28% 낮다. 장중 6만6000원까지 하락하며 52주 신저가를 다시 썼다. 외국인은 파생상품 시장을 제외한 주식 현물 시장에서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는 개인의 승리

개인 투자자는 올 들어 국내 증시에서 2조542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1~7월로 좁혀 보면 9조3410억원어치 매도했다. 이 기간(1~7월) 가장 많이 판 건 슬롯 꽁 머니(6조9640억원)다. 슬롯 꽁 머니 우선주(1조5760억원)도 순매도 3위를 기록했다. 2020년 코로나19 상승장에서 7만~8만원대에 물렸던 개미들이 일제히 차익 실현에 나선 것이다.

개인은 장이 반등할 때마다 국내 주식을 처분한 뒤 미국 증시로 떠났다. 올해 개인의 해외 주식 순매수액은 95억9534만달러(약 12조8922억원)에 달한다.나스닥지수는 올 들어 14.35% 상승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그간 국내 증시의 승자는 외국인이라는 게 불문율처럼 여겨졌지만 올해만큼은 예외”라며 “국내 증시에서 20조원 가까이 사들인 외국인의 평가 손실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상승장에서 주식을 팔아치우며 차익을 실현한 개인의 수익률이 더 높을 것”이라고 했다.

올 상반기 선방한 개인은 8월 급락장 이후 총 6조798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주로 슬롯 꽁 머니와 SK하이닉스를 쓸어 담았다. 한 자산운용사 본부장은 “과매도 구간에 진입해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수준까지 떨어진 슬롯 꽁 머니의 반등이 개인 투자자의 올해 수익률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