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슬롯는 고갱과 노란 집에서 예술가 공동체를 이룬 후 ‘의자’라 이름 붙인 두 점의 유화를 남겼다. 작품 <온라인 슬롯의 의자(1888년)와 <고갱의 의자(1888년)를 통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함을 나타냈다. 고갱은 그에 응하여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온라인 슬롯(1888년)를 작업했다. 이후 온라인 슬롯는 극심한 불안 증세를 겪게 된다. 그리고 고갱을 떠나보낸 후에도 <빈 의자 소묘 다섯 점을 남겼다.

적과의 동거

온라인 슬롯는 점차 지쳐갔다. 일방적으로 자기 회화 방식만을 강요했던 고갱에게 그 억눌렸던 감정을 분출했다. 권위적인 고갱에게 두 점의 의자 그림으로 도발한 것이다. 우선 <빈센트의 의자에서 온라인 슬롯는 고갱이 강조했던 거친 황마로 된 캔버스를 거부하고 익숙한 임파스토 기법을 사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격렬한 색상들을 다시 끌어들여 붉은색 바닥, 파란색 문, 하늘색 벽, 선명한 노란색 의자를 그렸다. 이 방식은 솔직히 온라인 슬롯이 경멸하던 것이었다. 소나무로 만든 튼튼한 바닥과 골풀 방석, 통통한 다리, 그리고 뭉툭한 발치를 배치했고 목재 속 옹이와 문 경첩까지 묘사했다. 의자 위에는 담배와 파이프를 그려 넣었다.
빈센트 반 고흐, <고흐의 의자 alt= (1888년) / 그림출처. © The National Gallery">
빈센트 반 온라인 슬롯, <온라인 슬롯의 의자 (1888년) / 그림출처. © The National Gallery
반면 <고갱의 의자에는 황마로 된 캔버스에 윤곽을 그리되 고갱이 비난하던 색조의 혼합, 그러니까 호두나무 의자에는 갈색과 보라색을, 바닥에는 빨간색을, 벽에는 강렬한 진녹색을 임파스토로 그렸다. 캔버스 밖으로 뚫고 나올 정도로 의자의 앞다리 하나를 힘차게 표현했다. 타오르는 양초와 책 두 권을 의자에 올려 두었는데, 책은 온라인 슬롯가 이전에 아버지의 성경 그림에 저항적으로 대립시켰던 에밀 졸라의 소설책 <삶의 기쁨처럼 노란색이다.
빈센트 반 고흐, <고갱의 의자 alt= (1888년) / 그림출처. © Van Gogh Museum Amsterdam">
빈센트 반 온라인 슬롯, <고갱의 의자 (1888년) / 그림출처. © Van Gogh Museum Amsterdam
빈센트 반 온라인 슬롯, <성경책과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 (1885년) / 그림출처. © Van Gogh Museum Amsterdam
빈센트 반 온라인 슬롯, <성경책과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 (1885년) / 그림출처. © Van Gogh Museum Amsterdam
온라인 슬롯의 의자는 ‘낮 효과’를 통해 향수 어린 과거의 꿈을 되살렸다면, 고갱의 팔걸이의자는 ‘밤 효과’로 암울한 분위기를 불러냈다. 대조적인 두 의자를 통해 온라인 슬롯는 더 이상 고갱의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절연한 의지를 보였다.
(왼쪽) 빈센트 반 고흐, <고흐의 의자 alt=(1888년) / 그림출처. © The National Gallery, (오른쪽) 빈센트 반 온라인 슬롯,<고갱의 의자> (1888년) / 그림출처. © Van Gogh Museum Amsterdam">
(왼쪽) 빈센트 반 온라인 슬롯, <온라인 슬롯의 의자 (1888년) / 그림출처. © The National Gallery, (오른쪽) 빈센트 반 온라인 슬롯, <고갱의 의자 (1888년) / 그림출처. © Van Gogh Museum Amsterdam
하지만 그사이 고갱은 한때 머물렀던 북프랑스 퐁타벤에서 테오가 기획한 전시회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바로 그때 온라인 슬롯는 원인 모를 우울한 불안으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불안을 그 원인을 알기 힘들어 겪게 되는 긴장이라 하였다. 그는 불안(angst)과 공포(furcht)를 구분하였는데 공포란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기에 치료가 수월한 반면, 불안은 그 대상을 알기 힘들어 치료가 쉽지 않다.

온라인 슬롯의 결별 작품

테오는 퐁타벤에서 고갱의 그림과 도자기 홍보에 온 힘을 쏟았을 뿐만 아니라 고갱과 빈번한 연락을 취하며 액자 제작 및 전시에 전념하였다. 온라인 슬롯가 지금 불안한 것은 고갱의 작품 판매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고갱의 팬 중에는 에드가 드가(Edgar Degas) 같은 유명 화가도 있었지만, 온라인 슬롯가 그런 사실로 힘든 건 아니었다. 당시 편지를 보면 온라인 슬롯가 몹시 언짢은 이유를 동생 테오에게서 찾을 수 있다. “형, 고갱은 밀레가 갔던 길을 따를 수 있어.”

온라인 슬롯가 존경하지만 따를 수 없었던 밀레를 테오는 고갱이 따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온라인 슬롯도 테오에게 인정받고 싶은 나머지 “고갱이 고통스러워하며 심각하게 병든 상태로 이곳에 왔지만 노란 집에서 치유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노란 집에서 고갱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됐다고까지 했다. 노란 집을 떠난다면 고갱은 다시 병들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기도 했다. 온라인 슬롯는 테오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고갱이 노란 집에 머무는 것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온라인 슬롯의 불안 심리는 다음의 편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지막 날까지 내 눈에는 한 가지만 보이는구나. 온라인 슬롯이 파리로 가서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고 싶다는 바람과 아를에서의 삶 사이에서 마음이 나뉜 채 작업하는 것 말이다.”

온라인 슬롯의 인간관계에서 유일한 희망은 테오였다. 하지만 고갱이 떠난다면 테오와의 관계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불안감은 온라인 슬롯를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온라인 슬롯는 자신감마저 잃었고 작업을 지속할 수도 없었다. 결국 테오가 가진 자신의 그림을 돌려달라고 말하며 1년 정도 그림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한편 고갱은 온라인 슬롯가 그린 두 개의 의자 그림을 보고 상당히 불쾌했다. 자신을 향한 온라인 슬롯의 적대감을 알아채자 곧바로 캔버스에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작업 중인 온라인 슬롯를 담아냈다. 온라인 슬롯가 아주 좋아했던 해바라기뿐 아니라 그 색상까지도 흉내 냈다. 노란색과 주황색이 독특하게 섞여 만들어진 색상들은 해바라기로부터 온라인 슬롯의 외투, 얼굴, 수염에까지 이어진다. 고갱은 이 그림의 배경으로 허상의 풍경을 그려 넣었다. 후경의 푸른색과 노란색, 초록색 등은 해안가를 떠올리며 온라인 슬롯는 마치 배를 타고 파란 물이 보이는 가장자리에 위험스럽게 앉아 작업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온라인 슬롯는 붓을 어중간하게 잡고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아니면 해바라기를 만지는 것인지 모호하게 만들었다. 얼굴은 술에 취한 듯 흐리멍덩하다. 특히 온라인 슬롯의 시선을 현실의 자연물, 즉 상상의 세계보다는 아무 의미도 없는 해바라기에만 고정시켰다. 눈을 가늘게 떠서 사물을 응시하는 온라인 슬롯의 모습에서 뭔가 거북함이 느껴진다.
폴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는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 그림출처. © Van Gogh Museum Amsterdam
폴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는 빈센트 반 온라인 슬롯 (1888년) / 그림출처. © Van Gogh Museum Amsterdam
고갱은 자신의 많은 작품을 판매하라고 테오에게 보냈는데, 그 가운데 해바라기를 그리는 온라인 슬롯의 그림도 있었다. 고갱은 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초상화는 온라인 슬롯를 완벽히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내 생각엔 그 은밀한 분위기만큼은 제대로 품은 것 같군요.”

고갱은 온라인 슬롯가 ‘실재를 표현한다’는 것이 단순히 자연을 베끼는 모방에 불과함을 냉소적으로 드러냈다. 이 그림에서 원숭이처럼 온라인 슬롯의 입술은 탱탱하고 턱은 돌출되어 있다. 다윈의 원숭이처럼 자연에만 매달리는, 아직 덜 진화된 존재로 온라인 슬롯가 그려졌다. 심지어 온라인 슬롯의 무릎에서 팔레트 사이로 튀어나온 작은 엄지손가락으로 온라인 슬롯의 남성성까지 멸시했다.

고갱, 테오, 온라인 슬롯와의 삼각관계

테오는 이 그림에 대해 형의 내면을 훌륭하게 포착했다고 "대단한 예술 작품"이라고 했다. 온라인 슬롯는 여러 주 동안 동생이 일방적으로 고갱을 칭찬하자 불안이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그 순간 에밀 베르나르와 점점 멀어진 우정을 떠올렸다.

고갱이 아를에 도착한 이후, 베르나르는 고갱과 계속해서 서신을 주고받으면서도 온라인 슬롯의 편지에는 이상하리만치 답장하지 않았었다. 온라인 슬롯는 친구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하필 고갱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다는 사실이 이내 찜찜했다. 고갱이 자신과 친구들을 이간질하는 모사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솔직히 테오와의 관계도 이런 식으로 될까 봐 두려웠다.

결국 의심과 공포는 동생과 고갱이 주고받는 편지들을 엿보게 했다. 그러다가 테오가 아를로 오라는 고갱의 초대에 즉각적으로 응했다는 내용을 읽고는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일찌감치 온라인 슬롯는 테오에게 아를에 와달라는 간청을 지속해서 요구했던 터였다. 노란 집과 자신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고 오직 고갱만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테오가 얄미웠다.

그러던 12월 중순, 고갱은 온라인 슬롯의 가장 약한 부분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내용을 테오에게 편지했다.

“파리로 돌아가야겠군요. 빈센트와 나는 더 이상 마찰 없이 함께 살 수 없습니다. 기질이 맞지 않는 데다 작업을 진척시키려면 안정이 필요합니다. 놀랄 만큼 지적인 그를 매우 존경하기에 떠나는 게 유감이지만 반드시 떠나야겠습니다.”

온라인 슬롯는 고갱이 노란 집을 떠나게 된다면 테오가 자신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2년 전 그는 파리에 있을 때 테오로부터 사업 문제로 상처받은 후로는 테오가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프로이트는 임상을 통해 불안과 공포가 충격이라는 요소와 관련됨을 밝혀냈다. 즉 충격의 대상을 기억하면서 염려하는 것을 ‘공포’라 했고, 너무 어릴 때 일어난 일이거나 혹은 그 충격이 너무 커서 공포의 대상을 망각하더라도 무의식에 남아 있는 것을 ‘불안’이라 했다. 그래서 불안은 공포의 원인도 모른 채 긴장하게 만든다.
빈센트 반 고흐 <노란 집> (1888) / 그림출처. © Van Gogh Museum Amsterdam
빈센트 반 온라인 슬롯 <노란 집 (1888) / 그림출처. © Van Gogh Museum Amsterdam
테오가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라서 온라인 슬롯는 그것을 부정하려고 했다. 심지어 아버지와 어머니마저 등져버린 상황에서 동생 테오마저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애써 테오가 자신을 끝까지 보살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고갱이 테오와 가까워지면서 온라인 슬롯는 초조했고 계속 불안했다. 맨정신으로 버틸 수 없어 술을 마시며 기인과 같은 삶으로 불안에 대처했다.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다. 공포라면 그 원인을 제거하거나 대비하면 되지만, 불안은 그 대상을 찾기도 힘들고 그 원인을 찾아도 인정하지 못한다. 온라인 슬롯의 경우처럼 불안은 자신을 억압하고 공격할 뿐이다. 온라인 슬롯는 자신의 골방에서 테오만을 바라보고 압생트를 마시거나 마냥 기다렸다. 온라인 슬롯는 그런 자신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가련한 온라인 슬롯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는 없었던 것인가?

비록 불안이 캄캄한 방 안에 자신을 가둬 놓더라도 겁내거나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상처와 충격의 경험을 일부러 꺼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어두운 방 안의 자신을 어루만지고 토닥여 줄 수 있는 당당하고 굳센 자신과 대면해야겠다.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혼자서 갈 수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고립된 자신을 해방할 수 있다.

김동훈 인문학연구소 ‘퓨라파케’ 대표